문화유랑단 REVIEW :: 영화 '조커' (2019)
<스릴러, 범죄, 드라마 / 15세 이상 관람가 / 123분 / 감독 : 토드 필립스 / 주연 : 호아킨 피닉스, 로버트 드 니로 외>
:: 본 리뷰에는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만, 비교적 영화 전반적인 내용을 관통하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아직 관람 전이거나, 별도의 내용을 알고 싶지 않으신 분들은 관람 후에 보시는 것을 권장합뉘다
:: 작품의 세부적인 내용과 관람평이 궁금하신 분들께선 배우싸롱 36회차 - '조커' 편 (바로 듣기) 방송을 들어보시는 것을 추천해 드립니다.
힘겨운 시대이다. 세상은 참으로 버겁고, 정치는 언제나 극단적이며, 경제는 야속히 휘청거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고 작은 일련의 희망들을 품으며, 다가올 내일이 향해 버티는 것이 오늘일 것이다.
여기 한 남자가 있다. 아서라는 이름을 가진 사내.
그는 유명한 코미디언이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 중이며, 광대 일을 하며 돈을 벌고 있다. 병든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며, 어머니의 말씀을 지극히 잘 따르는 효자인 선한 삶을 살아가는 인물. 단지, 정신적으로 아픔을 지니고 있고, 약에 의지하고 있으며, 웃기지 못하는 코미디언일 뿐이다.
이상한 나라의 아서
애석하게도 세상은 가만 놔두지 않는다. 지인과 동료들은 은근슬쩍, 때론 대 놓고 그를 폄하하고 안주 삼기도 하며, 낯선 사람들에게는 무척 이상한 사람으로 비추어진다. 심지어 그의 어머니조차 너는 웃기지 안잖냐며 평생을 간직해온 코미디언이 꿈인 그의 가슴에 너무도 쉽게 비수를 꽂는다. 결과적으로 그저 참고, 억세게 살아왔던 그의 삶은 우연하게도 나락으로 빠져가던 순간에 휘말린 사건을 중심으로, 보다 적극적으로 표출하며 분열하던 현재의 모습을 위해, 이전까지의 평범한 일상을 송두리째 던져버리는 삶을 택함으로써 만들어지게 되는 아이러니함인 동시에, 이를 지지하는 자신의 팬 (= 기반)들을 바라보며, 이로써 닥치게 될 더 많은 살육의 순간까지도 온전히 받아들이고야 말겠다는 처연한 그를 인정하게 된다.
이렇듯 작품을 관통하는 키워드 속에, 대중이 가장 쉽게 눈치챌 수 있는 ‘차별’이라는 요소를 작중 내내 던져가며, 이를 지켜보는 관객에게 질문하는 뉘앙스는, 아서라는 인물이 처한 위치와 그에 대한 연민의 감정을 극한으로 끌어올리는 비극적인 장치로써 충실히 수행한다. 이는 조커로써 각성하게 되는 아서의 극단적인 인생 시초에 있어, 사실은 평범한 이들과 다를 것이 없던 한 명의 시민이자 사람이었으며, 어쩌면 이는 모두가 가슴속에 담고 살아가는 시한폭탄으로 그려지며 현실을 견디어 내는 관객의 모습을 투영시키기에 확실한 매개체로 연동되기에 이른다. 혼돈의 연속인 시대 속에 놓인 그의 일상에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과 이를 담아가는 과정 안에서, 관객 스스로가 숨죽여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황은 역설적이게도 비슷한 결이 상기되는 오늘날에 처한 상황을 불러들이지만, 정작 영화는 차분함 마저 느껴지는 호흡으로 덤덤하게 풀어내고 있다.
두 개의 자아 (지킬박사와 하이드)
그러나 현실적인 서사 자체로 받아들여질 법한 시나리오의 토대를 바라보다 보면, 결과적으로는 극단적인 평행선을 달려가고야 만다.
하나의 사건이 일어남과 동시에 벌어진 이후의 시점들 속에 간간히 보이는 연출들을 혹시? 라는 의미로써 발견하고 따라가는 관객의 입장에서는, 아서라는 인물이 살고있는 이상한 세상 속으로의 동행을 더더욱 방해하는 요소로 전락해버리고 만다.
이는 영화의 시작점에서 발생하는 사건을 빌미로 말하고자 하는 아서라는 인물이 지닌 상징성과 향후에 벌어지는 과정들의 정당성을 무의식적으로 내포하는 반면, 기절해버린 그를 안심시킬 환각의 세상 (=꿈)으로 도피시키는 장치인지를 분간하기 쉽지 않다는 관점으로 연결된다. 전체적인 내용은 비교적 다양한 방향으로 해석해볼 수 있을 법한 흐름이라 할지라도, 전개되는 흐름 속에서 이를 지켜보는 관객에게는 확실한 몰입감을 전달하는 동시에 답답한 강제성으로 나뉘는 역린이 돼버리고 만다는 점이다. 물론 그의 자아가 온전치 않은 상태이며, 아픈 상처로 그려지는 웃음이라는 병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주도적 선택의 결과물) 행복으로 활용된다는 점은 소재로써 적정하게 선택되었다고는 하지만, 그 또한 작중의 사건들을 토대로 벌어진 비극적인 결말을 향해 치닫는 흐름을 일관적으로 판단하고 살펴보기가 쉽지 않은 구조로 그려진다는 견해로도 이어질 수 있는 측면이다. 어찌 보면 이렇게 설계된 본 판의 말로는 ‘각자 판단하기 나름’이라는 메시지일지도 모르겠으나, 이를 사실적인 느낌으로 받아들였다는 측면과, ‘그래서 뭐가 어쨌다는 건데?’라고 반문하는 양 갈래 길에 서게 되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
마침내 조커로 각성하며
전체적인 이야기에 가려졌으나, 핵심적인 메시지 중 한 가지인 집안 살인신 이후 계단 신으로 이어지는 서사의 나열은, 기존의 본 캐릭터가 지니고 있었던 고유의 아이덴티티이기도 한 전통의 보라 컬러가 아닌, 레드 컬러를 전면에 내세운 토대를 통해, 이 영화가 보여주고자 하는 시점 속에 조커라는 캐릭터가 기존에 선보여졌던 해석과 연출의 결들과 다르다는 점을 강조한다. 비록 계단에서 보여주는 그의 단순 색감에 대한 이야기를 연결하기엔 흥겨운 춤사위에 상징성이 극대화돼버린 장면에 짐짓 허무해지는 관점 또한 없지 않겠으나, 본바탕에 깔리는 컬러의 연출은 유독 빛을 노출하는 본 작품에 있어, 여태껏 다양한 지점으로 풀어둔 장치들에 대한 최종적인 연결고리가 되는 동시에 첫 살인 이후 스스로 진실을 택한 (또는 유명세) 조커라는 캐릭터의 상징성을 확고하게 전달하는 도구로써 극대화되기에 이른다. 단지 오랜 시간 알려진 악당이라는 캐릭터이자 한 배우가 그토록 열성을 다해 연기에 임하였으나 유명을 달리했던 모순이 남겨진, 캐릭터 자체와도 함께하는 기대감과 우려감을 향한 감독의 견해이며 정답일지도 모른다.
물론, 자신이 가장 연출해보고 싶던 캐릭터였는지는 모르겠으나 반대로 어찌 보면 가장 고심한 선택이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
누구에게 삿대질할 것인가
우리는 인생에 놓이게 되는 갈등과 분열이라는 전재에 앞서, 선택이라는 기로를 마주 서게 된다.
120분가량 지속되는 선택이라는 기로들과 사건의 행방 속에 받아들이게 되는 진실의 몫은 고스란히 관객에게 남겨졌지만, 모든 맥락을 부차하고 누구나 폭탄이 터질 수밖에 없다는 발상 이전에, 무모하거나 허무한 자괴감을 받아들인 채 버튼을 누르지는 말아야 하기에. 개인 또는 집단의 지성이 숨죽이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 작품을 통해 감독이 DC라는 레이블의 수많은 캐릭터 가운데, 굳이 독이든 성배와도 같은 조커라는 캐릭터를 가져다 이런 이야기를 꾸려간 것인지... 그 내막을 상세히 알 수는 없겠으나, 분열되는 이 시대 속에 놓인 군상들 속에 어느새 매몰될지도 모른 채로 오늘에 끌려가고 있는 개개인들을 향한 경고가 아닐까? 영화의 완성도와 평가의 양 극단적인 반응은 조금 물리더라도, 가장 쉽고 단순 반복적인 배치를 지닌 '차별'과 '편견'이라는 장치를 통해 관객에게 주어지는 의미는 여러모로 고심을 안겨주게 된다는 점은 부정이 어려울 만큼 사실이다.
그렇기에 누군가의 말처럼, 자고 일어나기 무섭게도 시시각각 요지경 속인 현실 속에, 이 질문을 던지며 마쳐본다.
‘당신은 누구에게 삿대질할 것인가’
* 초고 작성 : 2019년 10월 19일
* 최종 수정 : 2019년 10월 24일
- 발행 : 2019년 10월 24일
- WRITTER : SEOGA
- PHOTO : 영화 '조커' ⓒ워너브라더스 / ⓒDC 필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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